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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사역

서빙고저녁(베트남아웃리치간증문) 김*혜

  • 작성일자 : 2019.08.29
  • 조회수 : 1293

내 생애 첫 아웃리치….아웃리치 나라가 정해졌을 때 처음에는 러시아에 가고 싶었다..러시아가 형제님의 나라로 결정되고,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베트남으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가 나왔다. 의외였다. 난 베트남을 수차례 다녀왔다. 작년에도 다녀와서 안 가본 나라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8월1일부터 휴가가 정해져 있었기에 그 시기에 맞는 곳으로 가야 된다고 JDS면접 때부터 말씀을 드리기도 했는데, JDS를 다니면서 나에게 놓여진 상황 대로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계획하심을 알고 싶어졌다.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휴가가 아닌데에도 갈수 있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베트남으로 부르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정해지고 준비를 하면서 많은걸 준비해야함을 알게 되고 부담스러움도 있었다. 준비과정에서 팀자매님들의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고 그때마다 우리팀은 하나가되서 기도했다. 준비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해주셨다. 우리팀은 한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신랑이 무릎수술을 하게 되면서, 아웃리치를 포기해야 되는건지 백만번 고민했다. 하지만 꼭가고 싶은 맘은 있었기에 주님께 갈수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베트남을 가게 해 주셨고, 해결된 문제들은 없었지만, 비행기를 타면서 부터 그 문제들로 어려웠던 마음들이 눈처럼 녹았다. 아웃리치동안에 신기할 정도로 생각이 안났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되고, 처음 아웃리치라서 설레였다. 팀종님과 자매님들 덕분에 플로잉 받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공항에서 짐을 챙기면서 핸드케리어 해야 되는 물건도 많아지니, 이렇게 많이 가져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가 받은 플로잉이라도 좀 두고 올 걸…하는 마음도 생겼다. 어깨에 메고 끌고, 들고, 이민 가는 수준이 였다. 이렇게 가득 가져가는 짐처럼 내 마음도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첫날 땅 밟기를 하면서, 더운 날씨와 강한 햇빛에 당황스러웠다. 덥고 습하다는걸 알았지만, 여행이 아닌 아웃리치라서 걱정이 되었다. 오기전에 하나님께 갈수만 있게 해주시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잘 섬기고 오겠다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루도 안되서 무너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나약한 존재이다…. 선교사님의 인도로 시장안에 있는 교회에 갔다. 토요일이라 찬양 예배를 드리고있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이 느껴졌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주님안에서는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고아원에 갔다. 아이들 간식 샐러드빵과 떡볶이를 만들어주고, 사진을 찍어주며 액자를 만들어주고, 더운 날씨에 놀수 있는 물총을 나눠주며, 각자 자기일을 찾아 열심히 섬겼다. 가건물에 에어컨 한대로 생활하며, 이불도 없이 베개 하나로 타일로 된 바닥에서 낯잠 자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아이들앞에서 베트남어로 “목마른사슴” 찬양을 하는데 아이들이 따라서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 이였다. 그후로 우리팀은 장애인시설과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야학에 갔다. 장애인시설에 가기 전, 나는 약간 두려웠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 이였다. 너무도 밝은 모습에 놀랐다. 생활에 찌들어 사는 나보다도 마음에 여유가 있고, 긍정적이며, 더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불편한 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로 돈을 벌으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장애인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지 않았을 텐데 베트남은 그렇지않았다. 장애인에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달리 생각해 왔다니…난 나의 교만함과 죄를 보게 되었다. 야학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액자를 만들어주었는데 한 아이가 자기 사진을 보며, “내가 죽으면 이사진을 놓고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한다” 라고 했다. 그 아이는 그 사진이 생애 첫 사진이라고 하며, 그 사진 한장에 우리에게 너무도 감사해 하며, 종이에 자기 얼굴이 있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고아원과 야학 아이들 선물을 줄 때마다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올 때 짐이 많아 힘들어했는데 더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작은것 에도 감사하는 아이를 보며,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데도 주님께 감사하지않는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내 욕심만을 채우려고 애를 쓰며,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고,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의 자녀라하면서도 베풀지않고, 주님이 사랑과 은혜로 살면서도, 사랑할 줄 모르고 남의 잘못만 보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웃리치에 다녀오고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응답을 듣고 계획하심을 알게 되었다고들 하지만, 난 내마음에 변화가 왔다. 사랑을 받아야 행복인 것만 알았는데, 사랑을 주는 것도 행복이란것을 알게되고,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아웃리치를 준비하고 돌아올 때 까지 주님이 인도하심과 나를 얼마나 사랑 하시는지를 알게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게 되고, 주님이 항상 함께하심을 알게 되면서, 나의 행동과 말에도 신중함이 생기게 되고, 외롭다고 느끼고 나만 불행하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아웃리치에 같이 동행한 팀종님과 자매님들을 만나게 해 주심도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은 나에게 베트남 아웃리치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다. 아웃리치기간에는 바뀐 환경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쉬움만 남는다. 이젠 주님께 베트남을 품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평생 과제가 남았지만, 행복하다. 아직은 선교를 내놓고 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이 역사 하실거라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