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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사역

JDS 수원온누리 저녁반 11기 김*수

  • 작성일자 : 2016.01.20
  • 조회수 : 2454

2012년 JDS를 졸업한 아내로부터 처음 JDS 권유를 받았을 때 저는 업무적으로 출장도 많고 퇴근도 늦은 회사 특성상 아예 JDS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그렇게 답변했었습니다. 2013년 364일을 출근하며 일에 찌들려 피폐했던 휴대폰 상해주재원 생활에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져 2014년 주재원을 1년 반만에 때려치우고 조기에 귀국한 저는, 인격과 가정이 포기되어야만 하는 회사 생활과 그것을 이용하는 상사들에게 질려버린 상태였습니다.이런 와중에 회사 그룹장이었던 부사장 및 상사들과 고과문제로 대판 붙고 어려움을 겪은 후 올 초 회사 신우회원인 고영대 집사님으로부터 예수전도단의 SBS 성경연구를 권유받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를 늘 열망해왔던 저는 SBS에 처음 마음이 동했습니다. 문제는 SBS를 하려면 DTS를 무조건 먼저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회사를 휴직하거나 퇴직을 하고 DTS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교회 집사님들을 통해 JDS를 다시 권유받았습니다. “일단 먼저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먼저 해보라니. 그런 말이 어디있나” 생각하고 “JDS는 DTS의 짝퉁이 아니냐. 기왕 하려면 진짜를 해야지 나는 짝퉁은 안한다” 그렇게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교만의 극치였습니다. 간사님들이 “뭐 이런게 다 있나” 그러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차피 여름휴가를 5일 연속 쓸 수도 없으니 아웃리치는 불가능할거고 또 퇴근도 늦어 목요일 수업 참석이 불가능한데다가 토요일도 몇 번이나 강의를 들을 수 있을지 몰라 일단 한두 번 들어나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3월 12일 첫 강의날은 회사에서 다음날 회의준비로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가 갑자기 회의가 취소되어 수업 참석이 가능해졌습니다. 두 번째 수업날인 토요일은 회사 부서 워크샵이 있었는데 팀장이 안오는 바람에 워크샵이 일찍 끝나 버려 수업 참석이 가능해졌습니다. 두 번의 이러한 작은 사건이 저에게 ‘JDS를 들으라는 싸인인가?’ 하여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등록을 하니 그 다음주부터 일이 폭주하여 3월엔 목요일 수업 결석 혹은 가더라도 마지막 JDS교가 부를 때 도착. 토요일은 출근 후에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돈을 냈으니 그냥 반타작이라도 하자’하는 심정으로 JDS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강의내용 중 궁금한 것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살짝 삐딱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수업시간 어려운 질문을 통해 강사님에게 고의적인 부담을 드리기도 했고 심지어 팀장님으로부터 “세미나가 아니니 질문하지 말라” “불편하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만 이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나씩 들으면서 강사님들에 대해 ‘아니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점과 동시에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강사님들의 삶은 그야말로 사도행전이었습니다. 먹을게 없어서 기도하니 다른 예수전도단 간사님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갖다 주라고 했다고 먹을 것을 가져왔다는 얘기하며,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웠다는 얘기하며, 도저히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삶을 살고 계신 분들께 숙연해졌습니다. 수업 중 저에게 가장 어려운 수업은 ‘권위와 순종’이었습니다. 이미 부사장, 상무와 한판 붙고 이들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했던 저로서는 이들의 권위에 순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6월이 되어 아웃리치 체제로 팀이 꾸려지고 간사님들 기도로 팀종을 선출할 때 제가 팀종에 추천되자 이를 반대한 간사님들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아니 반대하면서 왜 뽑아?’ 하는 마음이 들어 간사님들께 “팀종 잘 못 뽑으셨네요”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팀종 직임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졌습니다. 제가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나라를 정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중국을 가면 언어 때문에 편하긴 하겠지만 제가 제 중국어를 의지할 것 같습니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나라를 가게 해 주세요” 중국어와 영어권을 빼니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이 남았습니다. 캄보디아는 제 인생에 너무나 생소한 곳이고 문자를 찾아보니 완전 뱀이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캄보디아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팀원들과 전도실습과 지역교회 섬김을 통해 우리 팀원들이 너무나 귀한 분들로 구성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팀에 해를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월 11일 간사애찬식을 통해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바쁜 분들이 언제 저렇게 준비를 했을까?’ 플로잉 순서를 통해 저는 많이 회개했습니다. 애초에 담당 간사님께서 플로잉 관련 공지를 하실 때 이전에 집 달라고 했다가 응답받으신 분 얘기를 하시면서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을 달라고 편지를 쓰세요”라고 하여 내용전달이 명확하게 되지 않은 점이 컸지만, 저는 제 이성적인 판단으로 선물의 가격 범위를 먼저 생각한 후에 구했고 상식선을 넘게 구한 편지들을 보면서는 마음으로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물이 응답되는 결과를 보면서 저는 식사시간에 제가 비난했던 분에게 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저의 생각이 얼마나 짧은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저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크루즈 여행권을 구할 걸 그랬습니다. 저는 처음에 책을 달라고 하려다가 혹시나 하고 클래식기타를 달라고 편지를 썼는데 마지막까지 편지를 집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장로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거나 받겠는가”라고 하시기에 그러겠다고 하고 마음을 비웠는데 애찬식 당일 클래식 기타를 받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기타로는 주님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데 쓰겠습니다” 아웃리치를 다녀와 팀별보고를 할 때 이 기타로 정찬두 형제님의 다친 귀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애초에 캐나다로 유학가기로 한 한건수 형제님을 제외하고도 두 분이나 우리 팀에서 아웃리치를 갈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웃리치를 가면 은혜가 크겠구나. 이게 마귀의 방해구나’ 그리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보기도팀에도 기도요청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JDS 초기에 열흘가까이 가야 하는 아웃리치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JDS를 했다가 팀종이 되어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기도했는데, 감사하게도 전혀 못 가실 것 같았던 우리 팀원들이 모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회사에서 공문이 내려와 올 여름휴가부터 일주일 이상씩 쉬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여러 상황으로 급히 돈이 필요해졌는지 직원들의 연차비용마저 아끼려고 직원들에게 연차를 다 쓰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입사이래 처음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캄보디아 아웃리치는 저에게 제 일생 최고의 쉼의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에 올인해온 제 인생에 캄보디아가 들어올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한 번도 없었지만 막상 이 나라가 제 인생에 들어오니 제 시야가 훨씬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팀원들과 함께한 아웃리치는 저에게 다 지어진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얹어놓은 저를 보게 했습니다. 섬기는 팀종이 아니라 섬김만 받고 왔습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매일 아침 나눈 기본 두 시간, 눈물범벅이 돼야 비로소 끝나는 끝장큐티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주 안에서 형제들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세우기 바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각자 애를 썼습니다. 선교사님과도 한 마음, 한 팀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랬겠구나’ 열흘간의 꿈 같은 아웃리치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양재온누리에서 열린 제자의 날 행사에서 우리 캄보디아팀 김상모 형제님이 수원온누리를 대표해서 간증했고 교회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아웃리치 보고회를 위해 동영상을 만들면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울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오니 상황은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차명권 목사님의 히브리어 풀이는 저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문이었으며, 자신의 삶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나눠주신 이훈 목사님의 강의는 저를 낮춰주었습니다. 성경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이훈 목사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회사를 바꾸든 부서를 바꾸든 이제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면서 가정을 챙길 수 있는 곳에서 일해야겠다 싶어 추석연휴 전날 휴가를 내고 무턱대로 아내와 양지 비전빌리지에 올라갔습니다. 1층 시안홀에 가서 우리가 JDS에서 했던 것처럼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저를 인도해 주세요” 마음 속에 하나님이 음성을 주셨습니다. “이게 내가 너에게 주는 응답의 말이다” 그러면서 ‘빌립보서 2장 8절’ 이라는 글자가 야구공만하게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급히 일어나 시안홀 구석에 놓여진 성경책을 집어들고 말씀을 찾았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저는 얼어붙었습니다. 이 구절이 저에게는 ‘예수를 보아라 너를 보아라. 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죽어라’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JDS를 해야 하는 핵심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죽어야 할 저의 자아, 저의 자존심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확!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디를 가나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깨우쳐 주셨습니다. 추석휴가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수업을 남긴 하루 전 회사에서 일하고있다가 김동균 조간사님이 보낸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내일 마지막 수업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말씀 외워오세요” 저는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마지막 수업을 받으러 교회로 걸어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이 마지막 수업시간입니다. 만일 성경말씀 암송할 때 총무님이 저를 시키면 하나님께서 제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다른 회사나 다른 부서로 옮기시기로 하시고 안 시키면 아직 회사에 남아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있으라는 싸인으로 알겠습니다” 사실 반대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안 시키면 보내주시는 것으로 하는 게 확률상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잔머리를 굴리는 것 같아서 반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총무님이 그랬습니다. “오늘은 전체가 다 같이 외우겠습니다” 헐! “하나님, 이게 저를 시키신건가요, 안 시키신 건가요?” 시킨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나님은 제가 실망하지 않도록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애매하게 응답을 하신 것 같습니다. 부서장과의 관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제가 빌2:8 말씀을 지금 회사에서 통과하면 진짜로 제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든 부서든 옮겨주실 것 같습니다. 물론 어쩌면 안 움직일 수도 있겠죠. 제가 장소와 상관없이 주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어쨌든 JDS를 통해서 저는 자유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 입 밖으로 비난했던 임원 상사에 대한 비방의 말을 이제는 그쳤습니다.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학생애찬식을 준비하면서 주제였던 ‘그 사랑’을 묵상했습니다. 묵상을 깊이할수록 깨닫는 것은 그것은 ‘십자가’ 였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비전빌리지 기도 때 받은 말씀 빌립보서 2장 8절을 포스트잇에 적어 휴대폰에 붙였습니다. 사실 저를 힘들게 하는 바로 그 임원 때문에 저만큼이나 고통스러워하는 유관부서 동료 한 명이 2주 전 저에게 “이런 인간은 집에 보내야 합니다. 같이 인사팀에 정식으로 제소합시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실제 저는 작년말 인사팀에 제소한 경험도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어디선가 책을 받아왔다며 읽고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 왜 용서해야 하는가 > 였습니다. 그 책 겉장에 이런 글이 쓰여있었습니다.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 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이 표현은 제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그거 인사팀 제소해봐야 아무 변화 없어요. 저는 이 일에서 빠지겠습니다. 크리스천으로써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제가 그 자리를 빼앗으려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크리스천으로써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JDS를 했던 올 1년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몹시 견디기 힘든 한 해입니다. 지금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JDS를 통해서 남는 장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DTS의 짝퉁이라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분들에게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해보라고 권하겠습니다. 자신의 귀한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을 섬겨주신 목사님들, 간사님들께도 감사합니다. 끝까지 저에게 권면해준 아내와 여러 집사님들께도 감사합니다. 그 누구보다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